눈 전체를 덮던 렌즈는 어떻게 눈동자만 한 크기가 되었을까

1940년대 콘택트렌즈는 오늘날 렌즈통에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투명한 재료가 각막뿐 아니라 눈의 흰자까지 넓게 덮었습니다. 렌즈 아래에는 액체를 채웠고 가장자리는 공막 위에 놓였습니다. 시력은 교정할 수 있었지만 크고 무거웠습니다. 눈물과 공기의 순환이 제한돼 오래 착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렌즈 기술자 케빈 투오이는 질문을 바꿨습니다.
흰자 위에 놓이는 큰 테두리가 꼭 필요할까. 시력을 교정하는 중앙부만 남기면 어떻게 될까.
플라스틱이 가능하게 한 변화
초기 렌즈는 유리로 만들어 깨지기 쉽고 무거웠습니다. 1930~40년대에는 PMMA라는 투명 플라스틱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보다 가볍고 가공하기 쉬웠지만 설계는 여전히 눈 전체를 덮던 형태를 이어갔습니다.
투오이는 1947년 무렵 작은 플라스틱 렌즈를 시험했고 1948년 2월 28일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특허는 1950년 6월 승인됐습니다.
그의 렌즈에는 공막 위에 놓이는 넓은 테두리가 없었습니다. 지름 약 11.5밀리미터의 렌즈가 각막 위에 놓였습니다. 오늘날 하드렌즈보다 크고 두꺼웠지만 당시 공막렌즈와 비교하면 작고 가벼웠습니다.
같은 규격인데 착용감이 다른 이유는 베이스커브와 직경이 같은데 왜 렌즈 착용감은 다를까에 정리했습니다.
작아지자 눈물이 움직였습니다
공막렌즈 아래의 액체는 갇히기 쉬웠고 각막이 흐려져 착용시간이 제한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작은 각막렌즈는 깜빡일 때 조금 움직였습니다. 그 움직임은 불편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렌즈 아래에서 눈물이 교환되는 길이 됐습니다.
초기 제품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두껍고 평평했으며 각막에 상처를 일으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후 제작자와 검안 전문가들이 곡선, 가장자리와 두께를 다듬었습니다.
하나의 발명이 오늘날 렌즈를 완성했다기보다 ‘눈 전체를 덮어야 한다’는 오래된 전제를 깬 일이 중요했습니다.
우연인가 발명인가
역사에는 공막렌즈의 테두리를 가공하다 중앙부만 남은 조각을 시험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투오이 이전에도 작은 플라스틱 각막렌즈를 구상하고 특허를 신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데니스 잉글랜드는 1945년 비슷한 방향의 특허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기술의 역사는 한 사람이 갑자기 모든 것을 떠올리는 장면보다 여러 사람의 시도, 제작기술, 특허와 임상경험이 겹쳐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투오이를 콘택트렌즈의 유일한 발명가라고 부르기보다, 1948년 그의 설계와 특허가 작은 각막렌즈 확산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오늘의 작은 렌즈까지
PMMA는 산소를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산소투과성 단단한 재료와 부드러운 하이드로겔이 등장했습니다.
재료가 달라져도 1948년의 질문은 남았습니다. 렌즈가 어디에 닿는가. 얼마나 움직이는가. 눈물이 어떻게 교환되는가. 중심을 잡으면서 각막 부담을 줄이는가.
같은 도수라도 지름, 곡선, 가장자리와 재료에 따라 착용감이 다른 이유입니다. 상자의 숫자 몇 개만으로 모든 핏을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1948년에 작아진 렌즈는 플라스틱을 덜 쓴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눈과 렌즈 사이에 눈물이 다시 움직일 공간을 만든 설계였습니다.
작아졌지만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작은 렌즈는 눈물 교환을 가능하게 했지만 PMMA 자체는 산소를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개발은 단단한 렌즈에 산소투과성을 주는 방향과 물을 머금는 부드러운 재료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기만 하면 좋은 렌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꽉 맞으면 눈물 움직임이 부족하고 너무 느슨하면 중심을 벗어납니다. 오늘날 검사법은 정밀해졌지만 렌즈가 중앙에 있는지, 깜빡일 때 적절히 움직이는지, 가장자리에서 눈물이 교환되는지를 본다는 기본 질문은 이어집니다.
렌즈가 처음 만들어진 과정은 콘택트렌즈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에 있습니다.
참고자료
현재 렌즈 선택과 피팅은 전문가 검사를 따라야 합니다.